BLACK STORY 03: 고대 이집트의 검은색 숭배, 풍요와 부활의 상징

파라오의 무덤을 발굴한 고고학자들이 처음 마주한 것은 어둠이었다. 수천 년간 빛이 닿지 않은 그 공간에서, 벽화 속 검은색 안료는 시간을 견디며 여전히 그 의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검은색을 죽음과 슬픔의 색으로 생각하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이 색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오히려 그들에게 검은색은 죽음만큼이나 풍요와 부활의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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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STORY 1편부터 읽기 - 블랙홀과 빛의 부재가 풀어내는 검은색의 신비
이집트 신전 내부의 어두운 공간에 빛줄기가 비추고 있는 모습. 고대 상형문자와 부조로 장식된 벽과 기둥이 극적인 조명 아래 드러나고 있다.

오시리스의 피부는 왜 검은색일까?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신 중 하나였다. 형제 세트에게 살해당했다가 아내 이시스의 도움으로 부활한 그는 종종 녹색 피부나 검은 피부로 묘사되었다. 이집트 미술에서 신들은 대개 금색이나 붉은색으로 표현되었는데, 오시리스가 녹색이나 검은색으로 표현된 것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의 녹색 피부는 생명과 재생을 상징했고 검은 피부는 풍요로움과 비옥함을 그리고 부활이라는 오시리스의 핵심적 역할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부활과 생명의 신이 검은색으로 표현되었을까?

나일강의 검은 진흙, 생명의 근원

그 해답은 나일강에 있었다. 매년 6월에서 9월 사이, 나일강은 상류의 우기로 인해 홍수가 일어나 범람하면서 주변 지역에 검은 진흙을 남겼다. 이 검은 진흙은 이집트의 불모지를 비옥한 농경지로 변화시켰다. 농작물이 자라나는 기적을 가져온 이 검은흙은 생명과 풍요로움의 근원이었다. 마른땅이 죽은 듯했다가 검은 진흙과 함께 다시 생명력을 얻는 모습은, 오시리스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신화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이집트인들은 이 검은흙, '케멧(Kemet)'을 너무나 소중히 여겨 자신들의 나라를 '케멧의 땅'이라 불렀다. 우리가 '이집트'라고 부르는 나라를 그들은 스스로 '검은 땅'이라 불렀다. 일부 학자들은 검은색이 이집트 문화에서 풍요와 부활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케멧'이 완성이나 충만함의 개념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검은색이 이집트인들에게 가졌던 이런 특별한 의미는 그들의 삶의 방식과 자연환경에 깊이 뿌리내린 것이었다. 검은색이 그들의 정체성과 얼마나 밀접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미라, 영원한 생명을 향한 검은 여정

미라 제작에서도 검은색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 세계를 믿었고, 육체가 보존되어야 영혼이 그곳에서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부 방부 처리 과정에서는 역청(bitumen)과 같은 검은 물질이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오시리스 신앙과 상징적으로 연결될 수 있었다. 미라와 오시리스는 모두 사후 세계와 부활이라는 공통 주제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집트인들의 사후 관념에서 검은색은 변화와 재생의 과정을 상징할 수 있었다.

1922년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의 미라와 관을 조사하는 역사적인 흑백 사진. 카터와 조수가 나무 관 위에 놓인 미라화된 파라오의 유해를 신중하게 살펴보고 있다.

1922년 이집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가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했을 때 찍은 사진 중 하나로 그의 조수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투탕카멘의 미라와 관을 조사하고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KV62)은 1922년 11월 4일 이집트 룩소르 근처 왕가의 계곡에서 발견되었으며, 고대 이집트의 왕릉 중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유일한 무덤이다. Source: New York Times Photo Archive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많은 유물 중에는 검은색 안료로 만든 예술품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 안료는 주로 목탄과 망간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당시 기술로 이런 안정적인 안료를 만들어낸 것은 이집트인들의 화학적 지식이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검은색 안료는 다른 색상에 비해 시간이 지나도 변색이 적어, 영원성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

일상 속의 검은색, 눈을 보호하는 콜

파라오와 왕족들만 검은색의 신성함을 누린 것은 아니었다. 일반 이집트인들도 일상에서 검은색을 활용했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눈 주위에 바르던 검은 아이라이너 '콜'이다. 투탕카멘의 황금 마스크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아이메이크업은 단순한 미용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은 악령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 태양신 라의 눈을 모방하기 위해 콜을 발랐다. 또한 콜의 주 성분인 말라카이트와 갈레나는 항균 효과가 있어 실제로 눈 감염을 예방했다. 과학과 주술, 아름다움이 하나로 융합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지식의 색, 검은 잉크의 파피루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 이집트의 서기관들이 검은 잉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그들의 지식과 역사를 기록할 때, 그들은 주로 검은 잉크를 사용했고 중요한 부분만 빨간색으로 강조했다. 검은색은 지식과 지혜의 색이기도 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책에서 검은 글씨를 읽는 전통은 어쩌면 고대 이집트의 영향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는지도 모른다.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의 일부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외과 의학 문서 중 하나. 기원전 16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작성된 이 문서는 신성 문자(히에라틱)로 쓰여 있으며, 안면 외상에 대한 진단과 치료법을 담고 있다. 붉은색과 검은색 잉크로 작성된 텍스트가 파피루스 위에 정교하게 보존되어 있다.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외과 문서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기원전 1600년경에 신성 문자로 작성되었으며, 이 문서는 해부학적 관찰과 48가지 유형의 의학적 문제에 대한 검사, 진단, 치료, 예후를 정교하게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보이는 파피루스의 6번과 7번 판은 안면 외상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는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에드윈 스미스(Edwin Smith)는 미국인 고고학자이자 골동품 수집가였으며, 1862년 이집트 룩소르에서 이 파피루스를 구입했다. Credit: Jeff Dahl, EdSmPaPlateVIandVIIPrintsx.jpg,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색의 인식, 케멧의 실제 의미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검은 옷을 입는다. 이것은 서구 기독교 문화의 영향이 크지만, 검은색이 가진 존엄과 경건함은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적 인식인 듯하다. 검은색은 슬픔과 애도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존엄과 불변을 표현한다. 어쩌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오시리스의 지혜를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흥미롭게도 현대 이집트학자들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한 '검은색'의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검은색과 짙은 청색, 짙은 녹색을 모두 '케멧'의 범주에 포함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완전한 어둠보다는 풍요로운 생명력을 가진 짙은 색조의 개념에 더 가까웠을 수 있다. 색상에 대한 인식이 문화와 시대에 따라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영원성의 돌, 검은 화강암의 유산

오늘날 카이로 박물관에 가면 검은 화강암으로 만든 수많은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이 단단한 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물질로 여겨져, 영생을 바라는 파라오들의 모습을 담기에 완벽했다. 그들에게 검은색은 시간의 힘을 이기는 영원성의 색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돌들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1902년경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중앙 홀의 역사적 흑백 사진. 웅장한 열주와 아치형 천장이 있는 전시 공간에 파라오 석관과 다양한 고대 이집트 조각상들이 양쪽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검은 석관이 놓여 있다. 공식 명칭은 'Central Hall, Cairo Museum'

1902년 타흐리르 광장에 개관한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의 중앙 홀 모습을 묘사한 사진. 앨범 “Cartes postales”(엽서). Source: Archivio fotografico Museo Egizio, Turin, CC0 1.0

고대 이집트의 검은색 인식은 색채가 단순한 시각적 현상을 넘어 문화와 신앙, 자연과 인간 경험이 복합적으로 얽힌 상징체계임을 보여준다. 특히 그들이 이해한 검은색의 이중성 '죽음과 동시에 재생, 종말이면서도 새로운 시작'은 한 문명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시대와 경계를 초월해 인간 의식 깊은 곳에 자리한 원형적 상징으로 보인다. 오늘날 우리가 검은색에 부여하는 의미들 속에서도 어쩌면 수천 년 전 나일강 유역에 퇴적된 검은 진흙의 문화적 기억이 여전히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BLACK STORY 4편 보러 가기 - 부와 권력 그리고 금기의 이중성, 중세의 검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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