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한 귀족 저택, 화려한 무도회가 열리던 날 밤. 검은 벨벳 의상으로 나타난 귀부인이 방 안에 들어서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녀의 값비싼 검은 드레스는 부와 권위를 드러내는 명백한 과시였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창가에 앉은 까마귀가 울음소리를 내자 무도회장은 순식간에 공포감에 휩싸였다. 같은 검은색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까마귀를 죽음과 불운의 전조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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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STORY 1편부터 읽기 - 블랙홀과 빛의 부재가 풀어내는 검은색의 신비중세 시대의 검은색은 두 얼굴을 가졌다. 한편으로는 금지된 마법과 악마의 색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이런 모순적인 인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검은색이 어떻게 동시에 숭배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까?
값비싼 사치품, 검은 염료의 비밀
그 당시 검은 염료는 코치닐 벌레나 오크나무 껍질로 만들었는데, 매우 값비싼 재료였다. 염색 과정도 복잡하고 어려웠다. 특히 진한 검은색을 얻기 위해서는 직물을 여러 번 염색해야 했고, 색이 바래지 않도록 특별한 처리가 필요했다. 이런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고품질의 검은 옷은 일반인들이 쉽게 구할 수 없는 사치품이었다.
필리프 르 봉과 검은색 패션의 유행
15세기 초,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르 봉(Philip the Good)은 검은색 의상으로 유명했다. 이는 단순한 패션 취향이 아니었다. 1419년, 그의 아버지 요한 무두공이 암살당했을 때, 필리프는 평생 검은 옷만 입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개인적 애도는 곧 정치적 이미지로 변모했다. 검은색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권위와 절제, 세련됨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놀랍게도 필리프의 이 독특한 패션은 유럽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부르고뉴 궁정이 당시 유럽 패션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귀족들은 이 스타일을 받아들여, 검은 의상을 통해 자신들의 품위와 권력을 과시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초상화들을 보면, 왕족들이 주로 검은 의상을 입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스페인은 세계 최강국이었고, 그들의 검은 의상은 제국의 위엄을 상징했다.
검은 벨벳, 중세의 최고급 패션
특히 검은 벨벳은 최고의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벨벳 자체가 만들기 어려운 직물이었는데, 여기에 검은색까지 입히려면 더욱 뛰어난 기술이 필요했다. 밀라노와 베니스의 직물 장인들은 이런 고급 검은 벨벳을 생산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리고 상인들 사이에서는 "검은색이 황금만큼 귀하다"는 표현이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흥미롭게도 중세 후기에는 성직자들과 법률가, 학자들도 검은 의상을 즐겨 입었다. 이는 검은색이 세속적 유혹을 거부하는 금욕과 진지함을 상징했기 때문이다. 당시 대학들에서는 교수들이 검은 가운을 입었는데, 이 전통은 오늘날의 학위 가운으로 이어지고 있다.
금기의 색, 검은 마법의 출현
하지만 이렇게 존경받던 검은색은 같은 시기에 금기의 색이기도 했다. 중세의 집단적 상상력 속에서 검은색은 악마와 마녀, 이단자들과 연결되었다. "검은 마법"이란 말도 이때 생겨났다. 이는 신의 뜻을 거스르는 사악한 주술을 의미했다.
불길한 새 까마귀, 신화에서 미신으로
처음부터 까마귀가 불길함을 상징하는 새는 아니었다. 중세 이전 유럽의 여러 문화권에서 까마귀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게르만 신화에서 오딘의 두 까마귀 후긴과 무닌은 지혜와 기억을 상징했으며, 켈트 신화에서는 까마귀가 예언과 전쟁의 여신 모리간과 연관되었다.
중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까마귀의 상징성은 더욱 복합적으로 변화했다. 기독교 문화에서는 까마귀에 대한 양면적 해석이 공존했다. 성경에는 노아가 방주에서 내보낸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은 이야기가 있는 반면, 엘리야를 먹여 살린 까마귀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많은 지역에서 까마귀의 부정적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단순히 기독교의 영향만이 아닌, 까마귀의 생태적 특성(검은 색깔, 사체를 먹는 습성, 전장에 모이는 모습)과 당시의 사회적·문화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특히 14세기 흑사병 대유행 시기에 사체 주변에 모여드는 까마귀의 모습은 죽음과의 연관성을 더욱 강화시켰을 것이다.
마녀사냥과 검은 동물들의 비극
15세기 마녀사냥이 한창일 때, 검은 고양이를 키우거나 까마귀를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종종 마녀로 의심받았다. 이런 검은 동물들은 마녀의 '친숙한 영물'(familiar)로 여겨졌다. 1484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는 "지극한 열망으로"(Summis desiderantes affectibus)라는 칙서를 발표해 마녀사냥에 교황청의 지지를 표명했다. 이 칙서의 영향을 받아 1487년 하인리히 크라머와 야코프 스프렝거가 저술한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가 제작되었고 이 책에서 검은 동물들은 불길한 존재로 언급되었다. 이 저서는 마녀를 식별하고 처벌하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한 일종의 마녀사냥 지침서였다.
이로 인해 당시 유럽 전역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마녀라는 혐의로 박해받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특히 검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노인 여성들은 큰 위험에 처했다. 한 색깔이 이렇게 사람의 생사를 좌우했다니, 역사는 때론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런던탑의 까마귀, 미신의 현대적 변형
영국에서는 검은 까마귀와 관련된 미신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런던탑의 까마귀들이 모두 사라지면 영국 왕실이 몰락할 것이라는 전설 때문에, 지금도 특별히 관리인을 두고 까마귀들을 보호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때 불길한 새로 여겨지던 까마귀가 이제는 왕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수호자가 된 셈이다.
맥락에 따라 변하는 검은색의 의미
중세의 검은색 인식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같은 색이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귀족의 옷에 있는 검은색은 권위와 부를 상징했지만, 한밤중 하늘을 나는 까마귀의 검은색은 죽음과 악마를 연상시켰다. 이러한 모순은 색의 본질이 물리적 속성보다는 인간 경험의 집단적 해석과 합의에 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우리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악당들의 검은 의상이나, 핼러윈의 검은 고양이 장식, 마법사의 검은 망토와 모자 등은 모두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온 검은색의 이중적 이미지에서 비롯되었다. 한 색상이 이토록 다양하고 심지어 상충되는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 문화의 복잡성과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BLACK STORY 5편 보러 가기 - 자신감과 권위를 높이는 검은색의 숨겨진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