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혼돈 속에서 하얗게 펄럭이는 천 한 장. 피와 죽음으로 얼룩진 역사 속에서 인류는 피를 멈추는 보편적 신호로 흰 깃발을 선택했다. 이 단순한 천 조각이 지구상 모든 문명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살육의 현장에서도 평화를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인류의 역사를 흰 깃발을 통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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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STORY 1편부터 읽기 - 빛과 안료의 춤, 백색의 이중적 정체성고대로부터 이어진 평화의 신호
흰 깃발이 '항복'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관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놀랍게도 백기의 역사는 고대 중국 한나라 시대(기원전 202-기원후 220)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중국 문헌에서는 특정 상황에서 백색 깃발이나 천을 사용하여 평화적 의도나 항복을 표시했다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한나라보다도 더 이전인 고대 페르시아 제국에서도 비슷한 관습이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서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인들은 적대적 의도가 없음을 상대방에게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특정한 시각적 신호 체계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신호는 무기를 내려놓거나 빈 손을 보여주는 행위, 또는 특정 색상이나 상징물을 활용하는 방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직접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흰 깃발로 발전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인류 문명 초기부터 적대감 없이 접근하고자 하는 의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고대 로마에서도 항복이나 협상을 위한 사절은 종종 흰 옷을 입거나 흰 천을 들고 나타났다.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4세기 갈리아족 침공 중에 협상자들이 흰 깃발과 유사한 상징물을 들고 나타났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은 흰색을 평화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관습이 서로 다른 문명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중세 유럽에서의 확산과 제도화
유럽에서 흰 깃발의 사용이 널리 확산된 것은 중세 시대였다. 특히 백년전쟁(1337-1453) 동안 프랑스와 영국 군대는 협상을 요청하거나 일시적인 휴전을 표시할 때 흰 깃발을 사용했다. 이 긴 분쟁 기간 동안 흰 깃발의 의미는 더욱 공고화되었고, 유럽 전역의 군사 관행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중세 기사도 문화에서도 흰 깃발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사들은 전투 중 부상자를 돕거나 전사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일시적인 휴전을 요청할 때 흰 깃발을 사용했다. 이러한 관행은 전쟁 중에도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행동을 보장하는 방법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체계화
중세 후기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15-16세기에는 유럽의 군사 관행이 점차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전쟁 수행에 관한 규범과 관습이 더욱 발전하던 때로, 흰 깃발의 상징적 의미 역시 더욱 견고해졌다. 당시의 문헌 기록과 예술 작품에는 전투 중 휴전이나 협상을 원할 때 흰 깃발을 사용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당시 유럽의 주요 군사 이론가들은 전쟁 중 의사소통의 방법으로서 보편적 신호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이 과정에서 흰 깃발은 점차 국제적인 관습으로 확립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흰 깃발은 유럽 전역에서 보편적인 평화의 상징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국제법으로 인정받은 보편적 신호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며, 흰 깃발의 사용은 더욱 정교해지고 공식화되었다. 나폴레옹 전쟁 시대(19세기 초)에는 흰 깃발이 항복이나 협상을 위한 표준 신호로 완전히 자리 잡았으며, 군사 매뉴얼에는 흰 깃발을 올리는 절차와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 방식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러한 관습은 점차 발전하여 이후 국제법과 공식적인 전쟁 법규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19세기에 이르러 국제법이 발전하면서, 흰 깃발의 사용은 전쟁의 규칙 중 하나로 점차 성문화되기 시작했다. 1863년 미국의 리버 코드(Lieber Code)는 내전 중 연방군이 따라야 할 규칙을 명시한 문서로, 여기에는 휴전 깃발(flag of truce)로서 흰 깃발의 사용과 그 신성함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결정적으로, 1949년 제네바 협약은 '휴전기'와 '항복의 표시'에 관한 규정을 통해 흰 깃발의 의미와 사용을 국제법 체계 안에 포함시켰다. 이 협약에 따르면, 전투원이 흰 깃발을 들어 항복 의사를 명확히 표시했을 때 이들에 대한 공격은 금지된다. 이로써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비공식적 관습이 마침내 국제법적 보호를 받게 된 것이다.
흰색이 평화의 상징으로 선택된 이유
왜 하필 흰색이 전 세계적으로 항복과 평화의 상징이 되었을까? 아마도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첫째, 흰색의 뛰어난 가시성일 것이다.
전쟁터의 연기와 혼란 속에서도 흰색은 멀리서 쉽게 눈에 띈다. 검은 화약 연기가 자욱한 전통적 전장에서 흰색은 다른 어떤 색보다 식별하기 쉬웠을 것이다.
둘째, 흰색은 무장을 숨기기 어려운 색이다.
몸에 흰 천을 두르면 무기나 위험물을 숨기기 힘들기 때문에, 흰 깃발을 드는 행위는 '나는 무장하지 않았으며 적대적 의도가 없다'라는 신뢰할 수 있는 신호가 되었을 것이다.
존 트럼불(1756-1843), 콘월리스 경의 항복, 1820년, 캔버스에 유화, 365.7 cm × 548.6 cm, 미국 국회의사당 로툰다 소장. Source: Architect of the Capitol, Public Domain. 이 작품은 미국 독립 전쟁 중 요크타운 전투(1781) 이후 영국군의 항복 장면을 담고 있다. 중앙에는 조지 워싱턴과 프랑스-미국 동맹군이 묘사되어 있고, 왼쪽에 보이는 흰 깃발은 당시 이미 군사적 항복의 국제적 신호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셋째, 흰색은 여러 문화권에서 순수함과 결백함을 상징한다.
항복이나 협상을 위해 접근하는 사람이 흰색을 사용하는 것은 순수한 의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또한 많은 문화권에서 흰색은 신성함과 연결되어, 흰 깃발을 공격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로 여겨지기도 했다.
넷째, 흰색은 전통적으로 군대와 국가의 상징색으로 자주 사용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군사 깃발은 붉은색, 파란색, 검은색 등 더 강렬한 색상을 사용했다. 이런 중립성이 흰색을 모든 편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신호로 만들어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 평화 운동과 흰색의 확장된 의미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흰색은 단순한 항복의 상징을 넘어 더 넓은 의미의 평화 운동 상징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흰 비둘기와 함께, 흰색은 국제적인 평화 운동의 핵심 시각적 상징이 되었다. 1949년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평화의 비둘기'는 이러한 상징의 결정적인 시각화였다.
현대 정치 역학에서 흰색은 대립하는 정치적 색상들 사이에서 중립성을 표현한다. 전통적으로 전쟁과 분노는 붉은색으로, 다양한 정치적 진영은 파란색, 검은색, 녹색 등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흰색은 모든 대립을 초월한 화합과 조화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국제 정치 무대에서도 흰색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UN 평화유지군은 흰색 차량과 장비를 사용하며, 이는 그들의 중립적이고 평화적인 임무를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또한 많은 국제회의에서 흰색은 의전 색상으로 사용되어 국가 간 협력과 평화적 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평화의 상징, 흰 깃발. 그것은 인류가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평화를 향한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작은 깃발이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평화 시위에서 펄럭이는 흰 천은 수천 년 전 전장에서 목숨을 건 메시지를 전하던 그 흰 깃발의 후예다. 역사와 문화를 가로지르는 이 보편적 상징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평화의 언어임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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