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부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눈부신 흰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크리스털 장식의 헤어피스가 빛나며, 손에는 아름답게 디자인된 꽃다발을 들고 있는 모습. 이 이미지는 현대 결혼식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 되었다. 그런데 이 '전통'이 사실은 생각보다 짧은 역사를 가졌다는 사실, 알고 계셨는가?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흰 웨딩드레스의 기원과 그 의미의 변천사를 함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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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 STORY 1편부터 읽기 - 빛과 안료의 춤, 백색의 이중적 정체성다채로웠던 웨딩드레스의 역사
현대적 의미의 흰 웨딩드레스가 등장하기 전, 신부들은 어떤 옷을 입었을까? 놀랍게도 결혼식에서 흰색 드레스를 입는 것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19세기 중반 이전까지 신부들은 특별히 결혼식만을 위한 의상을 마련하는 경우가 드물었으며, 있다 해도 흰색이 아닌 다양한 색상의 의상을 선택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귀족 신부들은 주로 화려한 색상의 드레스를 선호했다. 붉은색은 열정과 사랑을, 파란색은 순결과 신실함을, 노란색은 풍요와 기쁨을 상징했다. 특히 붉은색은 결혼과 사랑의 색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많은 고대 문화에서 결혼식의 전통 색상이었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의 부유한 신부들은 금색과 은색 자수가 놓인 화려한 브로케이드 드레스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가문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일반 서민들은 주로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옷, 혹은 특별히 새로 지은 실용적인 색상의 의상을 입었다. 당시에는 결혼식 이후에도 그 의상을 계속 입을 수 있는 실용성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웨딩드레스를 입은 헬레나 푸르망, 1630-1631년경, 참나무 패널에 유화, 163.5 × 136.9 cm, 미국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 소장, 워싱턴 D.C. Public Domain. 이 작품은 루벤스의 두 번째 부인인 헬레나 푸르망(1614-1673)의 결혼식 초상화로, 그녀는 결혼 당시 16세였다. 검은색 드레스에 금색 자수가 화려하게 장식된 웨딩드레스를 입고 레이스 칼라와 보석 장식으로 꾸민 그녀의 모습은 17세기 초 플랑드르 귀족 여성의 결혼식 복장을 잘 보여준다. 붉은 커튼과 장식적인 카펫 등의 배경은 루벤스의 전형적인 화려한 바로크 양식을 나타낸다.
심지어 검은색 웨딩드레스도 유럽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맥락으로 사용되었다. 검은색은 주로 실용적이면서도 격식 있는 색상으로 간주되었고, 재혼의 경우나 상복을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부들 사이에서도 선택되었다. 이 의상의 주요 장점은 결혼식 이후에도 교회 예배나 다른 공식 행사에 입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중산층 여성들에게 검은색 드레스는 경제적으로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현명한 투자였다.
빅토리아 여왕이 선택한 흰 웨딩드레스의 탄생
흰 웨딩드레스의 시대를 연 결정적 순간은 1840년 2월 10일,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왕자의 결혼식이었다. 당시 20세였던 빅토리아 여왕은 전통적인 화려한 왕실 의상 대신 심플한 흰색 새틴 드레스를 선택했다. 이 드레스는 영국 스피탈필즈 지역의 실크와 수공예 레이스로 만들어졌으며, 오렌지 꽃 화관과 베일이 함께 착용되었다.
조지 헤이터(George Hayter, 1792-1871),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1840-42년, 캔버스에 유화, 195.8 × 273.5 cm, Royal Collection 소장, Public Domain. 이 작품은 1840년 2월 10일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결혼식 장면을 담고 있다. 중앙에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빅토리아 여왕과 빨간색 군복의 앨버트 공이 서 있으며, 주변에는 왕실 가족과 귀족들이 의식을 지켜보고 있다. 고딕 양식의 웅장한 내부 장식은 영국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헤이터는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화면 오른쪽 끝에 포함시켜 이 역사적 순간의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표현했다.
빅토리아의 이 선택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왕족들은 일반적으로 화려한 색상과 금은 자수가 놓인 의상을 입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왜 흰색을 선택했을까? 여러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빅토리아 여왕의 가장 분명한 의도는 드레스의 레이스를 통해 영국의 실크와 레이스 산업을 지원하고자 하는 경제적 동기였다. 이는 당시 프랑스 직물이 유럽 시장을 지배하던 상황에서 영국 제품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정치적 제스처이기도 했다. 앨버트 왕자에 대한 진실된 사랑과 결혼 생활에 대한 순수한 헌신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지만, 이는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 가치관이 강화되면서 후대에 부여된 의미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발전하던 인쇄 기술과 대중 언론의 성장 덕분에 빅토리아 여왕의 결혼식 모습은 이전 어떤 왕실 결혼식보다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그녀의 결혼식을 묘사한 삽화와 세부 사항들은 신문과 패션 잡지를 통해 유럽과 미국 전역에 빠르게 퍼졌다. 특히 "더 타임스"(The Times), "모닝 포스트"(Morning Post), 미국의 "고디스 레이디스 북"(Godey's Lady's Book) 같은 인기 있는 신문과 출판물들이 여왕의 드레스를 상세히 묘사하고 그림으로 재현했다. 이를 통해 많은 여성들이 그녀의 스타일을 모방하기 시작했고, 패션에 큰 영향력을 가졌던 빅토리아 여왕의 선택은 점차 결혼식 문화 전반을 변화시켰다.
부와 계급의 상징에서 순결의 상징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선택 이후 흰 웨딩드레스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심오한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 흰색 의상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매우 비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세탁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흰색 천은 쉽게 더러워지고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흰 웨딩드레스는 곧 부와 특권의 상징이 되었다. 흰 드레스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의상을 단 한 번만 입어도 될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신호였다. 또한 그것을 깨끗하게 유지할 하인들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중산층 여성들이 점차 흰 웨딩드레스를 입기 시작한 것은 상류층의 생활 방식을 모방하려는 사회적 야망의 표현이기도 했다. 빅토리아 시대가 진행되면서 웨딩드레스의 흰색은 점차 결혼과 연관된 순결과 순수함의 상징으로 그 의미가 강화되었다. 일반적으로 흰색이 순수함과 결백함을 나타내는 상징은 서양 문화에서 오랫동안 존재해 왔지만, 결혼의 맥락에서 이러한 상징성이 공식화된 것은 빅토리아 시대의 특징이었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 자신이 도덕적 가치와 가정의 미덕을 강조했기 때문에, 흰 웨딩드레스는 결혼에 있어 이러한 가치관을 반영하는 물리적 상징이 되었다. 1849년 한 여성 잡지는 "흰색이야말로 청순한 처녀의 마음을 가장 잘 반영하는 색"이라고 선언하며 웨딩드레스의 색상과 신부의 도덕적 성격을 직접적으로 연결 지었다.
20세기, 흰 웨딩드레스의 대중화와 의미의 변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흰 웨딩드레스는 점차 모든 계층의 여성들에게 확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의류 제조 기술의 발달과 대량 생산 시스템은 고급 웨딩드레스의 가격을 낮추었고, 더 많은 여성들이 흰 드레스를 입을 수 있게 되었다. 1920년대의 플래퍼 시대에는 짧고 단순한 형태의 웨딩드레스가 유행했으며,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는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디자인이 선호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에는 크리스찬 디올의 '뉴룩' 영향으로 풍성한 스커트와 잘록한 허리라인이 특징인 화려한 웨딩드레스가 유행했다.
이 시기에 흰 웨딩드레스의 상징적 의미도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흰색이 순결만을 상징한다는 관념은 점차 약화되었다. 대신 흰 웨딩드레스는 '전통'과 '결혼식'이라는 특별한 의식 자체를 상징하는 방향으로 의미가 변화했다. 1960년대와 70년대의 반문화 운동 시기에는 전통적인 흰 웨딩드레스에 대한 도전도 있었다. 많은 젊은 커플들이 비전통적인 결혼식을 선택하며 흰색이 아닌 다른 색상의 웨딩드레스나 심지어 일반 옷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1981년 다이애나 스펜서와 찰스 왕자의 결혼식은 공주 같은 화려한 흰 웨딩드레스에 대한 대중의 환상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현대의 흰 웨딩드레스, 전통과 개성 사이에서
오늘날의 흰 웨딩드레스는 더 이상 순결이나 부의 상징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특별한 의식을 위한 전통적 의상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 신부들에게 흰 드레스는 역사적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스타일과 취향을 표현할 수 있는 캔버스가 되었다. 21세기에는 순수한 흰색뿐만 아니라 아이보리, 샴페인, 블러시 핑크 등 다양한 색조의 웨딩드레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서양식 흰 웨딩드레스는 글로벌화를 통해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으로 확산되었으며, 각 문화권에서는 이를 자신들의 전통과 융합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빅토리아 여왕의 선택이 만든 이 '순백의 전통'은 세월이 흐르며 그 의미가 변화했지만,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기념하고 축복하는 상징으로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몇 년간 컬러 웨딩드레스나 특이한 디자인의 드레스가 대안으로 제시되었음에도, 여전히 대다수의 신부들이 흰색 계열의 드레스를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흰색이 지닌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과 결혼이라는 인생의 새 장을 시작하는 특별한 순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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